프라이버시와 공공성
건축물을 설계하는 것은 관계를 설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물리적으로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여 관계 맺게 하는 것을 기본으로 건축물을 둘러싼 수많은 컨텍스트와도 관계를 맺게 된다. 이에 대해 베아트리츠 콜로미냐는 그의 저서에서 현대사회에서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은 더 이상 물리적인 장소와 고정된 경계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작용이며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이라 밝혔다. 즉, 공공성이란 인간의 문화적,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 시각적인 등 다양한 부분과 관계하며, 그 경계 또한 모호하다고 볼 수 있다.
도심지에 주거 공간을 설계하는 일은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컨텍스트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담을 쌓고, 창을 깊숙이 내는 것 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게 된다. 어느 지역이든 고유의 도시 풍경은 존재한다. 한 지역에 오래 거주했다는 것은 내 집으로 향하는 진입로의 미세한 변화나 옆집 대문의 우체통 모양까지 일상의 일부로 만들어준다.
대상지의 앞마당 쪽에는 모과나무 한 그루가 오롯이 심어져 있다. 구기동의 안쪽은 빌라로 둘러 쌓여 마땅한 여유 공간이나 조경이 없는 지역이다. 봄에 피는 모과나무의 꽃과 가을에 열리는 열매는 오랜 기간을 걸쳐 동네 주민들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개인 주거공간으로서 프라이버시’와 지역 주민들에게 일상이 된 ‘대지의 공공성’ 간의 관계를 맺는 것이 설계의 시작점이 되었다.
구옥의 재생
건축의 재생은 문화재처럼 예전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작업이 아니며, 재개발 같이 예전 모습을 덮어버리고 마치 새것처럼 보이게 하는 작업은 더더욱 아니다.
건축의 재생은 [장소를 통한 기억의 회복이자 재생성을 통한 가능성의 발견]이다.
대상 건물은 외관만 전통 한옥을 흉내 낸 개량 가옥일 뿐, 건축적 관점에서는 보존할 가치를 찾기 힘든 건물이었다. 하지만 80년대 지어진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사람과 여러 공간으로 변화해 왔다. 이번 리모델링은 주거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결정이 되었지만 그곳을 사용해온 사람들과 기억의 자취를 존중하고 이어나가고 싶은 건축주의 의지가 매우 컸다. 따라서, 그 의지를 설계에 반영하고자 하였다. 정체성 없이 기괴한 모습을 가진 개량가옥의 특성을 무작정 부정하기 보다는 과거와 현재의 건축적 관계를 이어주고, 장소와 건물이 가지고 있는 세월과 흔적을 담고자 하였다.
구조
바스러질듯한 시멘트 벽돌의 구조체는 같은 규격의 16개의 철골 구조 기둥을 보강하면서 새로 조성한 콘크리트 바닥 기초와 연결하였고, 목재 지붕틀은 벽으로 막지 않고 전체의 지붕이 느껴지도록 유지하였다.
외피
기존 건물 표피에 추가된 얇은 들창의 겹은 차양이자 캐노피로 활용할 수 있으며, 외부 마당과 집의 경계를 흐려주는 가변적인 역할은 한다. 들창은 단층집이 가져야 할 사생활 보호와 외부로의 시야를 동시에 확보하면서 필요 시 남향집의 캐노피로도 쓸 수 있도록 하였다. 기존 건물과 땅이 만나는 곳에 놓인 기다란 벽돌 평상은 들창의 열고 닫힘에 따라 건축의 영역을 다르게 한다.
마당
마당의 경계는 내외부로의 시선이 답답하지 않도록 오프닝을 내어 시야를 확보했으며 좁은 보도 진입부에 남쪽에서 태양광이 들어오도록 하였다. 철재 대문 역시 그 높이를 최소한으로 낮추어 좁고 긴 좁은 골목길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이 답답함을 느끼지 않도록 의도한 결과이다. 마당의 포장은 기존의 잔디블럭을 재사용하면서 부족한 부분만 새로운 블럭을 섞어 사용하였고, 골목에서 교목나무 중 유일하게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마당의 모과나무는 여전히 마을로 열려 마당의 익숙한 풍경을 이어나가고자 하였다.